인천에서 알려지지 않은 근대건축물 –

인천에 알려지지 않은 근대건축물 신흥동 일본식 주택

仁川愛/인천이야기

2007-01-21 00:37:11

신흥동 일본식 주택

일반주택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공동 계획-‘우리 문화유산을 알고 보존하는 것‘>

인천에 알려지지 않은 근대건축물 신흥동 일본식 주택

쓰다 · 아들 장원

일본식 주택은 여전히 ​​중구 신흥동에 밀집해 있다.(후기 성도 교회 주변).


매스컴을 접하다 보면 이미 다른 곳에서 반복적으로 다뤄졌던 주제나 인물들을 보면 지루할 때가 많다.. 이것은 단지 미디어 이야기가 아닙니다., 차별화를 존재의 가치로 여기는 연구와 보고서에도 등장한다..

인천지역의 현대식 건물로 범위를 한정하면 건물은, 내용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잘못된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인용하는 현상까지 있다..

이지경이 된 주된 이유는 현장 조사와 기초 자료 조사를 무시하고 기존 문헌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천 지역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은 근대건축물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신흥동 일대에는 일본인이 거주하며 식민지를 형성한 일본식 가옥이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아직 이곳을 다룬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인천 부윤의 관저가 지금도 남아 있고, 일본식 가옥도 당시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당시 골목 풍경을 엿볼 수 있다.. 집 내부에 대한 자료가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집에 들어온 사람의 전언에 따르면 일본식 양식이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이 일대가 일본식 주택단지로 조성된 시기는 아직 기록이 없어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기존의 토대와 가옥의 외관으로 미루어 보아 상당한 비용을 들여 지은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도서관으로 쓰이던 옛 인천시립도서관 건물은 아직도 과거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건물 앞에는 여러 일본식 석등과 석상이 남아 있습니다..

과거의 모든 것이 문화유산은 아니다., 신흥동 일대에 남아 있는 일본식 가옥은 간과할 수 없는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개항부터 일제강점기까지 60오랜 세월 동안 서양인, 중국인과 일본인이 인천에 많은 외국 주택을 지었습니다..

또한 인천 사람들은 떠난 후 이곳에서 살았고, 생활습관에 적응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외적 혹은 평면적 변모가 이루어졌다.. 즉, 인천 사람들은 남의 집을 잘 활용하여 우리 집 인테리어에 맞게 개량한 것입니다., 일본식, 서양식을 합쳐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이나 특징을 고민하는 일은 주거문화사나 지역사 연구에 매우 중요하다.. 즉, 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거주자의 라이프스타일과 영혼이 합쳐져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건물물리적인 형태를 넘어 문화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일본식 가옥은 대부분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당시의 골목길을 엿볼 수 있다..


지금까지 인천의 근대건축에 대한 관심은 주로 관공서에 집중되어 있었다., 은행과 종교 건축물에 집중한 것은 사실이다.. 인천의 근대문화유산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공건물에서 일반주택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에 걸친 연구가 필요하다.. 특히 신흥동과 율목동의 일본식 가옥이 인기다. 6, 70몇 년의 두께를 가진 일년, 일본과 유럽의 가정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가정문화적 가치가 큰 문화유산입니다.. 아직 그것에 대해 충분히 논의되거나 연구되지 않았습니다., 더욱 진지한 관심과 연구가 필요한 문화유산이다..

* 이 기사는 인천시 인터넷신문과 해방문화사랑회가 인천의 근대문화유산을 알아보고 보호하기 위해 공동으로 작성하였습니다..